비엔나 1: 북유럽을 통과하다 다섯 밤과 낮



지금은 미세먼지, 그때는 황사로 종종 체육시간 운동장에 나가는 일이 취소되고는 했다. 선생님도 사람이고 세상만사 '케바케'라는 조건부를 달고나면 대부분 어떤 이들의 논리에 설득이 될 수 밖에 없는데 아무튼 황사인 날씨에도 굳이 운동장에서 수업을 강행하는 선생님들이 나의 학창시절 왕왕 있었다. 투덜대면서 운동장을 뛰다가 저 멀리서부터 영화 속에서나 보았던 허리케인과 같은 어마 무시한 크기의 모래바람이 몰아칠때면 '악'소리도 내지 못하고 운동장에 주저 앉거나 숨을 참기 바빴다. 한차례 큰 회오리 바람이 지나고 난 운동장은 신기하리만큼 고요했고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돌아보면 앞서 묘사했던 것에 서너개는 더 추가된 다양한 모습으로 아이들이 얼얼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넘기다 모래가 그 사이에 낀 것이 짜증나기도했는데 제일 참기 힘든 것은 콧속 안으로 들어간 모래바람이었다.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그게 '모래 냄새' 라는 것은 잘 알만한 그 냄새가 콧속에 진동했고 기분탓인지 입 안도 꺼끌거리는 느낌을 지우려 입안을 자주 헹구기도했다.

비엔나로 가는 비행기 안.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보았던 영화는 모래바람이 내내 등장하는 '매드맥스'었다. 성인이 된 이후에 '모래 냄새'를 맡은 적이 거의 없었는데 자연스레 어린 날의 기억이 소환되었고 그 덕분에 콧속 가득 한 차례 황사가 지나고 난 뒤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엔나로 가는 비행기는 북유럽의 상징인 핀란드의 국적기로 그 덕분에 나의 중간 경유지는 핀란드, 다시 말해 인생에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을 북유럽이을 거쳐가게 됐다. 콧속이 답답해서 그랬는지 얼른 핀란드에 도착하기를 바랐다. 실제 한국은 미세먼지가 가득하고 나는 영화때문에 그리고 장시간 비행기 안에 있는 터라 그 무엇보다도 맑은 공기가 고팠다. 조금씩 고도가 낮아지는 것을 느끼자 창문 덮개를 올리고 바깥을 보았다. 태어나 처음 보는 형태의 나무들이 수두룩하게 눈 앞에 펼쳐졌다. 언젠가 외국 아이들의 그림과 한국 아이들의 그림을 가지고 비교하는 내용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본 기억이 난다. 풍경을 그릴 때 대부분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산의 봉우리가 동그란것에 반해 외국의 아이들은 산 끝이 뾰족하며 만년설을 그려 넣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살면서 마주하는 풍경이 같은 산을 그리고 나무를 표현하는데도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는 내용이었는데 살면서 그냥 지나칠법한 어떤 사실을 '아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게 만들어준 프로그램이었다. 삼십년 넘도록 내가 봐왔던 나무들의 형태, 숲과는 전혀 다르고 그 빛깔도 다른 핀란드의 나무들은 동화책을 더 이상은 끼고 살지 않는 나이가 돼서야 '북유럽 동화' 라는 타이틀을 띤 어느 동화책에서 본 것과 같은 진한 초록빛에 끝이 날카로운, 하지만 그 굵기와 크기는 어마어마한 나무들이 반겨주었다. 


핀란드에 도착했다는 승무원의 기내방송이 지난 뒤에 역시나 기분 탓이었는지 순간 코가 뻥 뚫리는 묘한 체험을 해야만했다. 인간의 마음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체험한 순간이기도하다. 핀란드 반타 공항에 내려 환승구간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머리가 노랗고 눈동자가 파랗거나 초록색인 사람들보다는 얼핏보면 국적이 같다고 할 수 있지만 언어는 전혀 다른, 수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의 인파에 섞여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공항에서 머물수 있는 시간은 3시간 반이었고 최대한 구석진 자리로 향했다. 어렵게 떠나온 여행길인데 같은 나라 사람,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무리들과는 조금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컸다. 
방송이 나올때마다 썰물이 빠져나가듯 공항의 인파가 사라지며 조금씩 조금씩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들리지 않던 낯선 언어와 창밖의 풍경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로마, 베니스, 파리 등등 언제나 인기가 많은 유럽의 주요 도시들로 향하는 비행기가 출발할 때마다 주변을 둘러보게 됐다. 나와 함께 비엔나로 갈 동행인들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보통 '유럽 여행 가요' 라고 하면 '어디? 파리?' 혹은 '이태리?, 스페인?'을 하지만 오스트리아나 비엔나를 먼저 말하는 적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도 비엔나로 일주일간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몇몇 지인들로부터 '역시 넌 별종이야' 라는 소리를 들어야했다. 나와 같은 별종은 어떤 이들일까. 나의 바람대로 나와 비슷한 생김새의 사람들은 이제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익숙하지만 그렇다고 유창하지 않은 딱딱한 독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졌다는 것도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귀국길에도 핀란드를 다시 경유할 것이기에 면세점은 그냥 둘러보기만했다. 대신 핀란드의 물맛이 궁금해서 생수 두 병을 구입했다. 지금에와서 후회가 되는 것은 커피맛을 보지 못했다는 것. 아마 다른 도시, 다른 공항이었다면 물보다 커피를 택했을 것이다. 핀란드라서 물을 마시는 순간 내 몸 속 가득 정화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것 같기도하다. 비엔나로 향하는 비행기 수속을 곧 시작한다는 방송이 들리고 짐을 챙겨 탑승구로 향했다. 비엔나로 향하는 길이 몇 뼘은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고 늦은 감이 있지만 정말 그제서야 '여행을 가는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다. 그제서야 말이다.

비행기를 타기 전 밀폐되어있어 아무런 효과가 없을테지만 그래도 핀란드의 공기를 폐속 가득 채워넣고 싶어 크게 숨을 들이켰다. 상쾌한 공기중에 알수없는 다양한 인종과 음식의 냄새가 이국적으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뭉게뭉게 떠있는 구름 한 조각도 더 눈에 담고 싶어 창가에 바짝 기대어 앉아 소심하게 '안녕'을 건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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