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냥' 이라는 부사가 가진 힘은 크다. 오랜 시간동안 연락을 끊은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문득 생각이 나서 야심한 시각 전활 걸어 '그냥' 이라고 말을 할 수도 있고 알수 없는 눈물이 흐르거나 웃음이 터졌을 때 그 이유를 묻는 이에게 '그냥' 이라고 대답을 할 수도 있으니까. 그냥 무작정 걷고 싶고 그냥 어딘가에 이야기를 하거나 글을 쓰고 싶은 강렬한 욕구에 휩싸였다. 그래서 지난 날의 기록들은 뒤로 하고 번거로운 절차를 밟아 또 하나의 공간을 개설했다.
그런데 막상 '새글쓰기' 버튼을 누루고 글을 쓰고나니 방금 전까지 목구멍까지 일렁이던 그 마음은 식어버리는 이 알수없는 작용 효과는 무엇일까.

어제는 일상이 답답해서 오후 반차를 내고 미술관으로 향했다. 비슷한 시각 익숙한 경로를 통해 출퇴근을 하다보면 걷고 타는 일을 기계적으로 하게 된다. 기계적인 일상을 지내다보니 어느새 며칠 상간으로 두꺼운 겨울 외투를 입을 계절이 다가온 것을 염두하지만 정작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는지와 같은 풍경을 감상하는 일을 뒤로 하게 된다.
그래서였을까. 과거에는 그곳이 일상이었던 곳이 어제의 나에게는 새로운 곳, 오랜만에 와보는 그리운 풍경이라 그랬는지 노오란 은행나무 빨강 단풍잎들이 잊고 지내던 계절감을 일깨워줬다.

평일에도 고궁 근처는 사람이 많다. 대부분 관광객들이 주이지만 그 틈에서도 눈길이 머무는 곳은 젊은 연인들의 모습이다. 나의 그 시절과 닮은듯 또 다른 모습을 보며 지난 시간의 흐름을, 속도를 새삼 깨닫고 그때와 같은 거리를 거니는 지금의 나와 거리는 그대로인데 해가 바뀔 때마다 간판을 바꿔 단, 하지만 우리에게는 영원히 '그곳'일 그곳을 지난다. 한복을 입은 커플이 다가와 카메라 대신 휴대폰을 건네며 사진을 청한다. 이 각도 저 각도에서 성의를 다해 찍어주면 연신 '감사하다' 라는 답을 듣게된다. 그들의 모습이 담겼을 휴대폰을 요리조리 손가락을 화면에 갖다대고 바라보는 그들을 뒤로하며 현재와 미래의 두 사람에게 안녕을 고한다.

'답답해서' 라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지만 어제의 반차 사유는 어찌보면 '그냥' 이라고 해도 무관하다.
무작정. 그냥. 나는 휴가를 내고 일상에 잠시 변화를 준 것이다. 반짝하는 마음은 이렇게 다른 하루를 선사한다. 물론 그 반짝이는 속도감처럼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지만 그 여운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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